2009년 10월 21일 수요일

신영복 선생 강연

신영복 선생 강연이 있었다...
경금대 학장인 예종석 교수 초빙으로..특강을 하신다고 했다...
아마도 특수대학원 수업이었던 것 같은데...학생들이 주로 기업 CEO 였다...

선생이 CEO를 대상으로 무슨 이야기를 할지 내심 궁금했다..
소주와 붓글씨의 만남에 대해...??ㅋ
조금 이상한 생각을 들면서도...
신영복 선생의 이름을 처음 들어본다는 친구에게 선생을 소개해주고 싶은 마음에...
함께 강연장에 참석했다....

고3때던가...선생님이 일반인을 상대로 인문학 특강을 하시러..부산에 오신적이 있었다...
야자를 땡땡이 치고 강연이 있던 KBS홀로 달려갔었는데...내용은 많은 부분
그때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나는 때때로 선생의 다음 말을 이미 알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놀랍게도 선생은 강의 말미에 탈주를 말씀하고 계셨다...
20년 간의 옥살이에서 탈주하고 싶었던 선생은 들뢰즈/가타리가 마음에 들었던 모양이다...
선생은 옥살이의 경험....그리고 그 곳에서의 다양한 만남을 통해서
차이를 인정하는 차원을 넘어..차이를 통해 다른 존재가 되는 변화를 경험했다고 말씀하셨다...
이러한 차이의 긍정을 통해 우리는 소수자-되기에 도달할 수 있고...나아가.. 우리가 지향해 나가야 할 길은 소수자-되기를 통한 탈주라고 하셨다....

나는 묻지 않을 수 없었다...
난 들뢰즈/가타리의 소수자-되기를 떠들고 다녔지만...
용산참사를 겪으면서...내가 얼마나 관념의 늪에 빠져있었는지 느꼈기 때문이다...
사실...용산의 아픔이 나의 아픔일 수 없었다....
왜냐하면 난 한번도 난장이였던 적도 꼽추였던 적도 없으니까...
소수자-되기는커녕 이들의 아픔을 공감할 능력이나 존재하는지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난 스스로에게 역겨움을 느꼈다...룸펜...그것이 나에게 적당한 단어였다...
내가 말하는 진보적인 생각..때로 급진적인 구호가...서구 부잣집 도련님들의
포스트모던한 급진주의 정도는 아닐까하는 섬뜩한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선생에게 그 존재론적 변화는 어떻게 가능할 지 물었다...
생각이 변화를 넘어...몸의 변화를 만들어 내는 그..변화..

선생은 한 발 물러 나셨다...
생각은 좌파로 행동은 우파로...
아마 체게바라의 유명한 말을 염두해 두시고 하신 말씀 같았다...
그게 무슨 탈주야 하는 생각이 들면서도...
무슨 일을 하더라도...굶어죽지는 않을꺼라며... 하고 싶은 일을 하되...
밥벌이 공간을 만드는 것 또한...중요하다고 말씀해 주시는 선생의 말씀을
강연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조용히 곱씹었다...

현실의 조건들 위에서 싸우라는 말씀이셨고...
말씀을 떠나...무슨 고민인지 다 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질문을 들어주셨던...선생의 인품에...
위로받은 하루였다...

강연을 마치고 예종석 학장과 담소를 나누고 계시는 선생에게 다가가
<편지>에 싸인을 부탁드렸다....
유일하게 내가 싸인을 부탁드려서인지 선생은 기뻐하시며...선생의 만년필로
정성스레 싸인을 해주셨다....

같이 간 친구는 강연이 인상적이었으며, 선생께 사인을 받는 내 모습이..
흡사 소녀시대에게 싸인을 받은 10대 소년의 모습을 보는 것 같다며..농을 건냈다...

선생의 이름이 어떻게 되냐는 질문에...
"예, 이지훈이라고 합니다..."
...
"학생인가?"
"예.."
...
"선생님 감사합니다..."
...

다른 이야기들을 선생과 나누고 싶었지만...
수줍은 많은 남자들의 대화는 길게 이어지지 못한다...
난 선생이 수줍음이많은 사람이라는 사실을...싸인을 받는 짧은 시간 동안 느낄 수 있었다...

 

댓글 1개:

  1. 신영복 선생님,

    수줍음 많으신 분이라는 거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지난해 어떤 일로 두어달 계속 함께 일했었는데,

    꼭 그러셨어요. 수줍어하시는 선생님..



    며칠 후에 신영복 선생님의 귀한 특강이 또 있답니다.

    수줍은 대화 또 해보시면 어떠세요...

    http://think.action.or.kr/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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