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5월 4일 화요일

김태균 홈런(1호~9호)

1호 홈런(vs 오릭스, 4월 2일)


2호 홈런(vs 오릭스, 4월 3일)


3호 홈런(vs 소트프뱅크, 4월 30일)


4호 홈런(vs 소프트뱅크, 5월 1일)


5호 홈런(vs 소프트뱅크, 5월 1일)


6호 홈런(vs 니혼햄, 5월 3일)


7호 홈런(vs 니혼햄, 5월 3일)


8호 홈런(vs 니혼햄, 5월 4일)


9호 홈런(vs 오릭스, 5월 8일)

2010년 4월 12일 월요일

시리어스맨

인간이 회피할 수 없는 가장 자명한 진실이 있다면 그건 무엇일까? 그건 죽음이다. 그 누구도 죽음이라는 절대명제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인간의 모든 실존적 고민은 이 죽음을 자각하고 마주함으로써 시작된다. 세계에 던져진 존래로써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시리어스 맨>은 이 근본적인 질문을 ‘툭’ 던져 놓고 영화를 끝내 버린다. 기승전결의 일반적 영화문법에 익숙한 관객에게라면 퍽 불편하고 불친절한 영화다.




영화 속 주인공 래리는 대학에서 물리학을 가르치는 전형적인 미국 중산층 가정의 가장이다. 성실하고, 착실한 삶. 그 어디도 불편해 보이지 않던 그의 삶이 삐걱거리기 시작한다. 아내는 이웃집 아저씨와 바람이 나 이혼을 요구하고, 아들은 코카인을 피워대며 말썽을 부리고, 딸은 코를 성형하겠다며 래리의 지갑에 손을 댄다. 하나 있는 어리숙한 동생은 도박장을 기웃거리고, 래리를 음해하는 익명의 제보자 덕에 무난하리라 보였던 교수임용 심사에서도 난관에 봉착한다. 총제적 난국이다.

 

도대체 무엇이 이 착하디 착한 남자의 일상을 이렇게 공격하는 것인가? 래리는 너무 답답한 나머지 세 명의 랍비를 찾아간다. 절대자는 그에게 답을 줄 수 있을까? 래리는 신의 답변을 듣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래리는 해답보다 질문만 안고 신과의 대화를 그만둔다. 이때, 그의 삶을 한 큐에 정리해 주는 한방이 찾아온다. 전화로 이야기하기 곤란하니, 만나서 이야기를 나눠야 겠다는 의사의 전화한통. 래리는 현기증 날 것 처럼 머리가 깨끗해지는 것을 느낀다. 래리를 곤란하게 했던 모든 질문들은 이 전화 한방으로 모두 날라가 버린 것이다. 또, 말썽꾸러기 아들의 학교엔 거대한 토네이도가 불어온다. 그리고 영화는 끝난다.

질문만 던지던 영화는 관객들에게 질문을 유도하고 끝나 버린다. 자연의 거대한 힘과 죽음이라고 하는 피할 수 없는 인간의 운명 앞에 인간 군상들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이 거대한 구조적 힘 앞에 인간의 자율성은 힘을 잃고, 삶은 의미를 잃는다. 열심히 살아본들 무엇하겠는가? 래리처럼 불행만 겪다가 죽음을 맞이할 텐데...영화의 끝에, 덮쳐오는 허무주의를 떨쳐내기가 쉽지 않다. 나는 김훈이 말하는 그 힘의 세계가 보다 근본적인 우주의 질서라는 사실에 동의하며, 그래서 우주적 원근법으로 세상을 관조하는 현자들에게 모종의 존경심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구체적 현실의 장에서 분투해야하는 나는 결국 정치적 보수주의로 귀결되고 말, 이 허무주의를 인정할 수 없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현상 그대로에 대한 인정과 받아들임이 아니라 허무주의를 극복한 긍정의 삶의 방식을 찾는 것이 아닐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살아나가야 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무언가를 해야 한다.


세상에 어떤 답이 존재할까? 아마도 없다는 것이 가장 적절한 답이 될 것이다. 하지만 우린 답을 찾아가는 물음을 중단할 수 없다. 이 물음을 중단하지 않고, 끊임없이 질문하는 자세, 그 자체가 하나의 답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좋은 예술작품은 좋은 영화는 관객들로 하여금 질문을 생성시키는 영화이고, 그 질문으로 하여금 끊임없이 새롭게 영화텍스트를 분석하게 만드는 영화라고 생각한다. <시리어스맨>은 수많은 질문을 낳는 영화라는 점에서, 그래서 수많은 독해를 유발시키는 영화라는 점에서, 분명 좋은 영화다. 조금 시리어스해지는 것을 감수하고도 볼 필요가 있는 <시리어스맨>이다.





아, 이 착한 남자의 일상은 왜 이리 꼬여만 가는가?





2010년 2월 5일 금요일

채식주의자

우석훈의 <생태요괴전>은 개인적으로 비어있는 부분이 많은 책이라 생각한다.
대중서이고, 또 청소녀층을 겨냥한 책이니...당연한 것이겠지만
조금 더 엄밀하게 썼더라면 더 좋지 않았을까하는 아쉬움이 드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서문에 밝힌 것처럼 우석훈이 겨냥한 것을 생태적 관심을 유발시키는 것으로
한정시킨다면...적어도 이 책은 나에게 성공한 셈이다...


이 구절

 유기농 식품이나 생태적으로 건전한 음식을 많은 사람들이 '맛있다'고 느낀다면, 한국 생태 문제의 절반 정도는 이미 해결딘 것이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아, 나도 채식을 시작해야 하는가?
고기를 포기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건 무척 나를 곤혹스럽게 만드는 질문인데,
저 구절이 계속 머리를 맴도는 것이다.


내가 만난 첫 번째 채식주의자는
잠시 캐나다에 머물 때 만났던, 스위스 친구 패트릭이다.


우리는 처음에 무척 서먹한 사이였는데...
어느 날 내가 입고 간 체게바라 티셔츠를 매개로 급속히 가까워져서,
결국 둘도 없는 형제가 됐다. communism이라는 말만 꺼내도 손사래를 치는 한국 유학생들을
함께 비난하면서...ㅋㅋ
패트릭은 스위스 녹색당 당원이었고, 채식주의자였다
내가 캐나다에서 만난 사람 중에 유일하게 마르크스에 관한 대화를 할 수 있었던 친구이기도 했는데, 그는 성인이 되고 난 후 정치적인 이후로 채식을 시작했다고 말했을 때...
나는 약간의 충격을 받았던 것이 사실이다

나는 패트릭을 만나기 전까지 채식주의를 건강을 과도하게 신경쓴 나머지
우정을 포기한 예민한 사람들이나 하는 것으로 생각했는데,
생태적인 이유로 채식을 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알게 됐고,
패트릭과 같은 채식주의자들에게 약간의 존경심과 경외심을 가지게 됐다
내가 캐나다에 2008년에 있었으니, 그 시기는 한국의 미국산 소고기 수입문제로 난리가 났던 시절 아닌가? 나는 홈스테이 아줌마에게
자랑스레 바보같은 대통령때문에 한국이 발칵 뒤집혔다며
으기양양하게 촛불시위대 사진을 보여주면서도...미국소 보다 더 위험하다는 캐나다산 소를
아주아주 잘 먹었다... 저녁 상에 소가 오르면 아주 감사하는 마음으로 얌얌 잘 먹었다...
소고기를 포기할 수 있을까? 없을 것 같았다...광우병 걸려 뒤져도 먹다 뒤지자...
패트릭을 존경하고, 소 먹으면 일년에 몇 번이나 먹는다고?하는 질문으로
스스로를 합리화 시키면서...
패트릭과의 만남이 제기한 채식이라는 질문을 머리속에서 지웠다...


그리고 한국에 왔는데,
대학신문사에서 같이 일하던 선배가 고기를 안드신다고 했다
선배는 직장 회식자리에 가면 각종 밑반찬으로 술안주를 대신한다고 했다...
어...채식...
선배는 조금 나이롱 채식주의잔데...아주 가끔 닭도 드시고 그런다....
이런 분들을 페스코 베지테리안, 플렉시테리안 등으로 부르는 모양이다


그리고 얼마 전에
학교 동아리에 신입이 들어왔는데...
채식주의자라고 했다.
얘가 내가 본 베지테리안 중에 가장 강성(?)인 것 같다
비건(Vegan)이라고 부른다고 하는데,
유제품, 동물의 알 등의 모든 종류의 동물성 음식을 거부 한다고 한다...
내가 보기에 이 친구는 건강/미용 이 쪽에 방점을 두고 채식을 시작한 것 같다...
하지만 한국에서 채식하기가 여간 까다로운 일이 아닌데...
도시락을 싸다니며 철저히 채식을 하는 모습을 보고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이렇게 세명의 채식주의자를 알게 된건데...
자...
그럼 나는....어떻게 할 것인가?
생태문제의 절반이 해결된다는데....

지난 달에 초콜릿 복근을 만들겠다며 냉동실에 가득 재워 둔
닭가슴살만 다먹고...-.- 시작해 봐야겠다고 생각한다...
오늘 점심은 삼겹살을 먹었는데..너무 맛있었다...아, 괴롭다.
달빛요정 형님처럼 나도 너무 "도토리를 싫어하고, 고기반찬을 좋아했다"
때론 그냥 매트릭스안에 있을 걸 하는 생각이 든다


2010년 2월 3일 수요일

<거미여인의 키스>

"거미여인의 키스"를 영어스터디하는 친구들과 함께 봤다.

영어스터디에서 "신자유주의와 박애주의"의 상관관계를 다룬 텍스트를

다루고 있는데, 그 연장선상에서 인권영화의 기념비적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는

"거미여인의 키스"를 보기로 한 것이다.


                              


컬트무비라는 이야기를 듣고

무지 재미 없겠다고 생각했지만 착오였다.

황지우가 시를 헌사할 만하다.


개인의 자유를 소중히 생각하는 호모인 몰리나,

사회의 억압적 구조를 타파하기 위해 개인의 희생은 불가피하다는 정치범 발렌틴.

구조와 행위자...


이 영화는 1985년, 내가 태어나던 해 나왔는 데

이 시기는 한국은 물론 영화 감독의 나라(브라질)가 있는

남아메리카도 마르크스주의적 전통에 강하게 사로잡혀 있던 시기였다고 한다.

(이 시기를 경험적으로 서술하기에는 내가 너무 어렸다 ㅋ)

어떻게 이 당위를 대중에게 설득시킬 것인가?

어떻게 사회의 폭압적이고 구조적인 억압으로부터 민중을 해방시킬 것인가?

대의를 위해 소의를 희생할 수 있는 시기였고,

그것은 역사의 이름앞에 정당화될 수 있던 시기였다.

그러한 흐름에 이 영화는 새로운 질문을 던지고 있다.


신념의 사나이 발렌틴이 몰리나의 진실한 사랑에 거미여인과의 짧은 단꿈에 빠진 사이, 몰리나는 사회구조를 지키려는 자와 바꾸려는 자의 틈바구니에서 최후를 맞이하고 만다. 발렌틴도 몰리나도 사랑의 힘으로 조금씩 자신의 정체성을 이동시켜 갔다. 영화는 우리의 자유라고 하는 것은 결코 사회구조로 부터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하면서도, 인간해방를 위해 헌신하는 개인의 삶도 자유를 배반하는 거미줄에 갇히고 마는 역설을 이야기하고 있다. 결국 중요한 것은 구역질나는 나찌 부역 영화에 분노하던 발렌틴으로 하여금 거미여인을 이해하게 만들었던 몰리나의 사랑, 나찌 따위가 무엇이건 아름다운 로맨스에 열광하던 몰리나로 하여금 변혁에 동참하게 만들었던 발렌틴의 사랑, 바로 그것일 터.


거대한 서사에 함몰되었을 때 우리는 정작 중요한

이 사랑..일상, 웃음, 눈물을 놓치고 만다.

보수주의자 김훈은 단호하게 말한다

"나는 신념보다 의심을 신뢰한다"고.

신념이 사라져 버린 시대, 정의가 해체되어 버린 시대, 허위가 장악한 시대...

이 말은 때로 위험할 수도 있지만, 나도 근본적으로 김훈의 말에 동의한다.

신념은 의심의 과정에 묻어나는 것이지,

의심을 장악해 버린 화석화 된 신념이 말해주는 것은

질문과 자기성찰을 멈추어버린 가여운 영혼의 몸부림 뿐,

2월 1일 박노자의 한겨레 칼럼 제목은

"회의할 줄 아는 인간이 자유인이다"였다


황지우의 시를 덧붙인다.



주인공의 심장에 박힌 총알은 순간,

     퍼어런 별이 되고


     황지우


 

호모인 몰리나가 애인 발렌틴의 혁명 조직원에게 다가가자마자

 그를 미행했던 브라질 國家安全企劃部 요원들이 덮치고

 도망쳤던 브라질 運動圈 택시가 다시 몰리나에게 다가와 총을 쏘고 달아나버린다

 목에 빨간 스카프를 한 몰리나, 그의 푸른 와이셔츠 포켓에 구멍이 뚫려 있다

 가련한 나의 몰리나, 왼손으로 심장을 만지면서

 한바탕 총격전으로 한적해진 광장을 천천히, 걸어간다

 그의 얼굴에 고통은 없었다

 다만, 심장을 찌르는, 쩌릿쩌릿한 회한 같은 것을 지그시 참고 있는

 흐릿한 우울이 떠 있다

 나는 내 벌떡거리는 염통을 만지면서

 이 속에 갑자기 뚫고 들어온

 너무나 차가워서 순간 뜨거운 金剛돌을 느끼고 있다

 이게 만약 나의 죽음이라면

 죽음은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것이구나

 아아, 이렇게 내가 죽다니

 알고는 있었으나 믿어지지 않는 사실!

 이 돌이킬 수 없는 깨달음!

 삶이란 게, 좆또 아무것도 아니었네

 서울역 뒤 염천교 부근처럼 돌포장으로 되어 있는 광장을 몇 발자국 더 걸어가는 내가

 죽어가면서 느낀 삶이란

 그저 어지럽다는 것,

 나는 길바닥에 푹 꼬꾸라진다

 그뒤로는 기억할 수도 전달할 수도 없는, 완전한 全體

 뒤늦게 안기부 요원들이 꼬꾸라진 몰리나에게 달려와 총을 턱에 대고 외쳐댄다

 그 전화번호를 대, 그러면 널 병원으로 데려가주겠어, 번호만 대, 넌 살 수 있어, 대란 말야

 몰리나, 흐린 눈으로 그들을 한번 쳐다보고는 눈을 감아버린다

 안기부 요원들, 이 더러운 호모 새끼, 이 쓰레기 같은 인간! 침을 뱉고 몰리나를 길가 쓰레기장에 던져버리고 간다

 몰리나는 오직 아름다워지고 싶기 때문에 살 수 있었다

 난 잘못 태어났단 말야, 알잖아, 넌 내가 지금 무얼 원하는가, 그래, 내 다리를 더 위로 올려줘

 쓰레기 같은 삶

 쓰레기통에 버려진 美

 주인공의 심장에 박힌 총알은 순간, 퍼어런 별이 되고

 

탄탄한 서평 쓰기 6가지 노하우


개인적인 감상 위주의 독후감이나, 리뷰에서 벗어난 객관적인 서평쓰기를 위한 6계명을 정리했습니다. 어떤 요소가 들어가야 하는지, 어떤 요소는 줄여야 하는지 검토해 보겠습니다.

1. 책 내용을 “전부” 요약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라. 이런 서평은 지루하다. (요약에 그치는 대학 레포트라고 생각하지 마라!)

2. “What?” 무엇을 이야기 할 것인지 정해라. 할 이야기가 명쾌하지 않은 서평은 단숨에 안 읽힌다. 해당 책을 읽지 않은 사람에게 ‘장황한 서평’은 고역이다.

3. 서평 쓰기 전에 밑그림 그리는 작업 즉, 구조 짜는 과정을 거쳐라.

(마무리가 안 되거나, 한쪽으로 치우치게 되거나, 시간이 오래 걸리는 사람에게 필수!)

4. 구조를 짜면서 ‘주제’가 살아있는지 점검하라. 여기서 말하는 책의 주제가 아니라 서평의 ‘주제’다. 도대체, 이 서평을 왜 쓰는가?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이길래 서평을 쓰는가? 스스로를 설득하지 못하면, 독자를 설득하지 못한다.

5. 서평의 ‘제목’은 하고 싶은 말 즉, 주제가 드러나면 좋다.

6. 좋은 글은 고속도로처럼 빠르다. 중간에 “턱턱” 걸리거나, 장황하면 좋은 글이 아니다.

 

참고) 구조짜는 법

① 책을 읽은 후 ‘충분히’ 생각할 시간을 갖는다.

(읽은 후 바로 쓰는 것은 좋지 않다. 하여, 무료서평이벤트 때문에 쓰는 습관은 도움이 안된다. 매번 같은 패턴의 ‘붕어빵식 서평’을 쓰게 된다. 관점없는 서평은 ‘죽은 서평’이다.)

② 생각의 시간을 통해, 서평에 ‘무엇을 담고 싶은지’ 정리한다.

③ 서평에 담고 싶은 키워드를 백지에 정리해본다.

④ 이 중 가장 하고 싶은 말 ‘한가지’를 고른다. 나머지 키워드는 과감하게 ‘축소’한다.

⑤ 본문에선 고른 ‘한가지’ 주제를 중심으로 책 내용+관점을 전개해나간다. ‘축소’한 키워드는 덧붙이는 방식으로 한 문단을 마련해 추가로 담아낸다.

⑥ 몇 단락으로 쓸 것인지, 단락 구성은 어떤 순서로 할 것인지 계획한다.

⑦ 단락 순서가 ‘유기적으로’ ‘매끄럽게’ ‘단숨에’ 연결되는지 말로 풀어본다.

⑧ 만들어 놓은 ‘구조’가 서평을 통해 하고 싶은 말. 즉 ‘주제’를 잘 전달하고 있는지 점검한다.

⑨ 서평쓰기를 시작한다.

※ 책 읽는 데 2일이 걸렸다면, 생각의 시간 역시 2일, 구조 짜는 시간은 1일 정도 잡는다. 초고 쓰는데 1일, 퇴고하는데 1일을 할애해 충분히 읽고, 생각하고, 집짓고, 만들고, 다듬는다. 특히, 초심자의 경우 생각, 구조, 퇴고 시간을 얻지 못하면 완성도가 떨어질 수 있다.

이렇게 1권의 책을 읽고, 쓰는데 걸리는 시간은 대략 일주일 정도면 충분하다. 단, 분량이 많은 책일 경우 더 걸릴 수 있다. 숙련자의 경우 경험이 쌓이면 시간을 줄일 수 있다. 독서가 '책과의 대화'이듯 서평 역시 '독자와의 대화'라고 생각하면 좋다. 그래야, 생각거리와 반문을 담을 수 있다.


출처:http://maehok.tistory.com/category/글쓰기

2010년 1월 31일 일요일

르몽드 디플로마크 정기구독

르몽드 디플로마크 1년 정기 구독을 신청했다.

90,000원의 거금을 들였다.


프랑스에서는 이런 신문이 나오고
한국에선 안 나온다
딱 그만큼의 수준 차이가 있는 것 같다

마르크스 왈 "자유언론의 일차적 조건은 산업이 아니어야 한다는 데 있다"고 말했다
산업이 아닌 대중 언론이 가능할 것 같지 않지만,
한국처럼 거의 100% 신문사 운영비를 광고료에 의존하고 있는 구조에서는
자유언론은 그렇다치고 어느 정도의 공공성도 담보하기 어려울게다

경향과 한겨레가 밉지만,
르몽드 디플로마크 정기구독을 신청하면서
미워도 다시 한번 그들을 사랑해야 겠다는 생각을 했다

2010년 1월 30일 토요일

예술 작품을 감상하는 네 가지 방법

진중권의 <교수대위의 까치>를 보니,
예술작품을 감상하는 네 가지 수준을 분류해 놓았다.

첫 번째가 정서적 감동(emotional)
두 번째가 지각적 쾌감(perceptual)
세 번째가 지성적 자극(intelluctual)
네 번째가 영성의 울림(spritual)

이 기준에 따라 내가 좋아하는 음악들을 분류해 보았다.

먼저, 정서적 감동을 준 작품을 꼽으라면...
밥딜런(Bob Dylan)'노킹온헤븐스도어(Knocking on Heavens Door)' 되겠다.

밥디런을 잘 모르던 시절 전지현의 "여친소"에 나왔던 '노킹온헤븐스도어'를
흥얼거리고 있자, 이를 본 한 선배가 영화 <노킹온헤븐스도어>를 봤는지 물어왔다.
그날 저녁, 영화를 봤고...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며 울려퍼지던 밥딜런의 목소리는
뭉클한 감동으로 다가왔다. 나도 언젠가 천국의 문 앞에 서야 할 때가 온다면,
데낄라와 바다, 그리고 밥딜런의 음악과 함께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다른 하나는 역시,
김광석'서른즈음에'...
김광석은 내가 가장 사랑하는 가수다
나는 김광석이 죽은 후 그의 음악을 듣기 시작했지만,
존재라는 것이 쓸쓸한 것이라는 걸 자각하기 시작한 무렵부터
나는 그가 전해주는 쓸쓸함을 사랑해왔다.
무슨 이유에선가 중학교 시절 김광석의 '서른즈음에'에 꽂혀
한 동안 이 노래를 부르고 다녔다.
친구들은 신기해 했고, 나는 그런 구별짓기 전략으로 이 노래를 부르고 다녔던
건지도 모르지만, 이 노래가 전해주는 울림에 나름의 방식으로 공감했던 것은 분명하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공감 능력이 반드시 경험을 전제로 하지는 않는다고 생각한다.
다만, 이제 점점 이 노래가 의미했던 것들을... 이 노래가 남긴 여백을...
경험적으로 이해해야 하는 나이로 다가가고 있고,
정말 서른즈음에 이 노래를 다시 불러 볼 생각이다...조금 더 쓸쓸해져 있을 그 무렵에...





지각적 쾌감을 준 작품이라는 기준이라면, 
너무 많은 소녀들이 생각난다...
우선 나에게 팝을 들어야 겠다는 생각을 최초로 갖게 해주신
브리트니 스피어스'웁스 아이 디드 잇 어게인'

오, 저 빨강 가죽 재킷은 잊을 수 없다

케이블 방송에서 나오던 이 뮤직비디오를 그저 넉 놓게 바라보던 시절이 생각난다.
저 짝 달라붙는 빨간 가죽 재킷을 입고, 도발적이고 자신감 넘치는 표정으로
노래하던 브리트니의 카리스마가 전해 준 강렬함은 잊을 수 없다.
게다가 그녀는 나보다 몇 살 많지 않은 10대 소녀였다...
SES와 핑클이 전해주던 풋풋함과는 비교할 수 없는 포스와 퍼포먼스를
브리티니 스피어스는 나에게(!) 선사해주고 있었다.
비록, 이후 결혼, 이혼, 임신, 삭발, 비만...등의 단어와 함께 신문지상을 달궜고,
마이클 무어의 조롱을 받아야 했지만...
나는 여전히 그녀의 가죽재킷을 사랑한다.
이런류의 애정은 좀 맹목적인 것이어서...브리트니가 멋지게 재기하길 나는 진심으로 바라고 있다. 다만, 마이클 무어가 조롱한 것이 무엇이었는지를 이해하는 어른이 되었길 희망하면서...^^oops~!


또 하나를 꼽자면 이 노래가 빠질 수 없다
원더걸스텔미
나는 현재 소녀시대 빠지만...
원더걸스의 애정에 비할바는 못된다. 왜냐하면, 그녀들은 나의 군대시절을 함께해 줬으니까!
원더걸스 없는 내무반은 상상도 하기 싫다.
원더걸스의 텔미는 모든 작업과 청소를 중지시키는 비상계엄령이었다.
모든 원칙과 질서는 이 노래가 울려퍼지는 4분간 정지된다.
우리 모두 춤을 췄고, 그녀들의 몸동작 하나 하나에 열광했다.

아, 그런데 선미가 탈퇴라니...
그래도 씩씩하게 자라렴..오빠가 응원할께!^^




지성적 자극의 관점이라면...
존 레논이매진
Imagine there's no heaven
it's easy if you try
No hell below us
above us only sky
Imagine all the people
living for today ahaa~

Imagine there's no countries
it isn't hard to do
Nothing to kill or die for
and no religion too
Imagine all the people
living life in peace -- you

You may say I'm a dreamer
but I'm not the only one
I hope someday
You'll join us
and the world will be one

Imagine no possessions
I wonder if you can
No need for geed nor hunger
a brotherhood of man
Imagine all the people
sharing all the world-- you~

You may say I'm a dreamer
but I'm not the only one
I hope someday
You'll join us
and the world will be one



에픽하이 레슨2
 [Hook]
It's a lie!(거짓이야!) 전쟁과 평화 모두다!(거짓이야!)
선생, 정치가! open up your eyes! 주변을지켜봐!
(기어다니는 자의 달콤한 혀를 믿지마)

It's a lie!(거짓이야!) 경제 미디아 모두다!(거짓이야!)
경찰, 성직자! open up your eyes! 다같이 외쳐봐!
(기어다니는 자의 달콤한 혀를 믿지마)
viva la revolution!

[1절-타블로]
민주, 자본주의 = 파탄의 숲의 뿌리, 
갈래진 혀 끝이 우리법을 내뱉으니
애국심이란 수면제가 책임감을 재우니,
반역심의 긴 수면이 독재를 깨우니
배불리 쳐먹는 자들이 자유경제 삼켜 
불경기라는 극 꾸며 경쟁심을 깎어
내가 왜 내 땀의 열매를 타인에게 바쳐? 
어째 내 꿈을 조립 라인에게 맡겨? 
blind 교과서, 사상의 학대, 보수주의가 강요하는 상상의 낙태
허탈한 사회 먹이 연쇄 때문에 학교는 다니면서 인생은 자퇴
눈떠! 인간의 법의 모순속에 hope은 없어,
투표권은 노예선의 노뿐 어서 벗어나고픈
그 어떤 권세보다 높은 신수 왕권의 금빛 날개를 펴



[2절-미쓰라]
빛은 항상 더 밝은곳 만을 비춰
이뤄 질 수 없는 future 끊임 없는 war
레일같은 평행선 인생에 함께 뛰어 가는 동반자?
never 결코 널 밀어내지 takeover 정치가 clay-more 보선?
그들의 명예를 여는 door
양의 탈을 쓰고 본 적 없는 미소로서
당에 목을 메는 명예쫓는 의원 스토커
전부 다 뜯어고쳐
교육제도 마져 뒤틀려 젊은 싹의 꿈의 줄기를 비틀어
하나 부터 열까지 기억하게 길들여
넥타이에 묶여 살아가게 이끌어
그 어떤 이끌림 보다 강한 feelling mp3
헛바람 새는 피리
나 길이 막힌 이 길 걸어봤자
걸인 히피 꼬마들에게 씹힐 운명
되려 내가 씹지

3절]
가식으로 사는 널 향한 증오 탄식으로 타는 널 향한 분노
다신 지껄일수없게 깊게 널 뭍고 ma flow
깊은 내면의 고통에서 널 춥고 외로워 울어도 문 틈빛을 지워
악몽과 절규 비운 술잔에 비춰 그려내는 너란 놈의 씨를 씹어

난 복수로 칼을 가는 감정없는 킬러 I kill y'all!
안도감에 만취된자여 think higher,
만족함을 싸워, knowledge is power! till the final hour
서랍에 접힐 태극기...너와 내겐 아직 해방기념일 없으니
여전히 이 젊은이 위험한 꿈을 꿔.
무법자 눈을떠, 화염병이 불 붙어 저 하늘에게 충성!
심판의 칼을 차리...이땅의 법이 출석부라면 나 결석하리

새로운 이야기를 해서 지성적 자극을 받은 작품들은 아니지만,,,
이들이 이런 노래를 불렀다는 것에 적지않은 충격을 받았던 것은 사실이다...

존 레논의 이매진은 중학교때 처음 들었는데... 영어 해석도 안됐을뿐더러
알았다 하더라도 무슨 얘기를 하고 있는 건지 이해하지 못했음은 분명하다.
하지만, 나중에 깜짝 놀랐다...나에겐 대중문화라는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에 대해
고민하게 만든 노래이기도 하다. 아도르노의 관점이라면 반문화도 결국
허위에 불과하겠지만,,, 저 가사와 존레논의 영향력이라면, 그를 결코
문화산업의 기수들과 동일선상에 놓기는 조금 곤란해진다.

에픽하이는 내가 좋아하는 랩 스타일이 아니기때문에,
나름 아주 힙합에 심취한 시절 나온 앨범임에도 귀기울여 듣지 않았다.
술 자리에 사회운동을 하시던 분이 에픽하이 가사를 들어봤냐고...이야기하는 것을 듣고..
집에 와서 살짝 술이 오른 상태에서 LESSON2를 들었다가,
에픽하이에 대한 그간의 무시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했다.
그리고 2집 이후의 앨범들은 발매 즉시 내 컴퓨터로 다운로드 된다.
popularity가 quality 를 손상시킨다는 생각에 에픽하이는
그들의 작품으로 대응하고 있는 셈이다. 나도 에픽하이에 한표!
DEAD P의 보이스와 에픽하이의 가사가 조화될 수 있다면 좋겠지만,
속칭 진정한 힙합뮤지션들의 공허한 외침을 듣고 있느니,
에픽하이를 듣는 편히 훨씬 낫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영성의 울림을 준 작품
...
나는 종교를 가진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들고 싶지 않고,
내 주위에서 나에게 종교를 권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좋은 사람들이고, 나를 진심으로 생각해 주는 사람들이어서...
종교에 대한 비판을 삼가는 편이다.
그래도, 난 도저히 종교를 가질 수 없다.
따라서...영성의 울림이라는 표현은 그 자체로 나에게 조금 낯간지러운 것이긴하다.
난 허망함, 공허함, 쓸쓸함...이런 것들은 인간의 삶 그 자체이며,
지겹고 비루해도...그냥 이것들을 안고 살아가는 것이 중요한 거라 생각한다.
그래서 살아내는 것의 문제지 극복의 문제가 아니라 본다.

언니네 이발관의 '가장 보통의 존재'는 지난 일년 내가 가장
자주 들었던 앨범이다.
"나는" "참 더럽게 외로운 나그네"고,
내가 사는 이곳은 "참 더럽게 이상한 세상이다".
그래도 "멈추라고 할 때까지 걸어야"하고
"그저 이렇게 하루를 살아갈 뿐"이다.

나는 이 노래들과 함께 지난 해를 보냈다.


소녀시대 Oh! 뮤직비디오

소녀시대의 새 앨범이 나왔다.
이번엔 치어걸 컨셉으로, 오오오오오 오빠를 연발~!
전곡을 벅스에서 다운 받았다.

소녀들을 향한 나의 욕망의 정체는 과연 무엇일까...?
한심스러우면서도 멈출 수 없다...
컴퓨터 바탕화면 배경화면도 소녀들의 신보 사진을 짜깁기한 것으로 체인지~!



Oh! 뮤직비디오

전에 알던 내가 아냐 Brand new sound

새로워진 나와 함께 One more round
Dance Dance Dance till we run this town
오빠 오빠 I'll be I'll be down down down down
(Talk> "I like the way you smile, like the way you talk, whenever you're ready, wanna be.... something new, oh!")

Hey 오빠 나 좀 봐 나를 좀 바라봐
(처음이야 이런 내 말투 ha!)
머리도 하고 화장도 했는데
(왜 너만 너만 모르니)

두근 두근 가슴이 떨려와요
자꾸 자꾸 상상만 하는걸요
어떻게 하나 콧대 높던 내가 말하고 싶어

Oh! Oh! Oh! 오빠를 사랑해
Ah! Ah! Ah! Ah! 많이 많이 해
수줍으니 제발 웃지마요
진심이니 놀리지도 말아요
또 바보 같은 말뿐야 Oh~

전에 알던 내가 아냐 Brand new sound
새로워진 나와 함께 One more round
Dance Dance Dance till we run this town
오빠 오빠 I'll be I'll be down down down down

오빠 잠깐만 잠깐만 들어봐
(자꾸 딴 얘기는 말고)
동생으로만 생각하진 말아
(1년 뒤면 후회할 걸)

몰라 몰라 내 맘을 전혀 몰라
눈치 없게 장난만 치는걸요
어떻게 하나 이 철없는 사람아 들어봐 정말

Oh! Oh! Oh! 오빠를 사랑해
Ah! Ah! Ah! Ah! 많이 많이 해
수줍으니 제발 웃지마요
진심이니 놀리지도 말아요
또 그러면 나 울지도 몰라 Oh~

전에 알던 내가 아냐 Brand new sound
뭔가 다른 오늘만은 뜨거운 마음
다음 다음 미루지 마 화만 나
오빠 오빠 이대로는 No! No! No! No!

Tell me, boy, boy. Love it?
it, it, it, it, it, it, Ah!

Oh! Oh! Oh! 오빠를 사랑해
Ah! Ah! Ah! Ah! 많이 많이 해
Oh! Oh! Oh! Oh! Oh! Oh! Oh! 오빠를 사랑해
Ah! Ah! Ah! Ah! Ah! Ah! Ah! Ah! 많이 많이 해
또 바보 같은 말뿐야 Oh~

Oh! Oh! Oh! Oh! Ah! Ah! Ah! Ah!
Oh! Oh! Oh! Oh! Oh! Oh! Oh! 오빠
를 사랑해
Ah! Ah! Ah! Ah! Ah! Ah! Ah! Ah! 많이 많이 해
Oh! Oh! Oh! Oh! Oh! Oh! Oh! 오빠를 사랑해
Ah! Ah! Ah! Ah! Ah! Ah! Ah! Ah! 많이 많이 Oh
 

2010년 1월 21일 목요일

<거대한 전환> 10장 발제문

칼폴라니의 <거대한 전환> 세미나를 생활도서관 친구들과 진행하고 있다.
매주 각자 1장씩 발제를 하고 토론하는 방식으로 진행하고 있는데,
이번주 나는 10장의 발제를 맡았고, 아래는 발제문이다.


                                                                                                                                 


10장, 정치경제학과 사회의 발견.

"거꾸로 읽는 경제학설사?"

이건 뭐 이번 장을 제목을 다시 단다면 ‘거꾸로 읽는 경제학설사’ 정도가 되겠군요. 폴라니는 이번 장에서 자본주의 사회에 살아가고 있는 우리가 일반적인 상식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경제학적 원리의 기초가 얼마나 허구적인 것인지, 잘못된 전제 위에 서 있는 것인지, 얼마나 첫 단추를 잘못 끼운 것인지에 대해서 쓰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번 장에는 고전 경제학의 창시자인 아담 스미스와 그의 이론을 발전시켜 고전 경제학의 주춧돌을 놓은 맬서스와 리카도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고, 경제학설사를 다시 점검해 본다는 마음으로 읽어야 했던 장이었습니다. 물론 그가 소개하는 이 고전경제학적 전통은 맹공격을 위한 사전준비 작업이지만 말이죠.ㅋ
 
폴라니는 아담 스미스는 빈민구제를 문제로 인식조차 하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스미스에게 부라는 것은 단지 공동체 생활의 한 측면에 불과하며 공동체의 여러 목적에 복속되는 존재로 여겼다는 것이죠. 다시 말해, 부의 문제란 거대한 인민 전체 집단의 물질적 복지를 뜻하는 것이라고 스미스는 보고 있습니다. 이러한 스미스의 견해는 “인류의 존엄성은 인간이 도덕적 존재라는 것에서 기인하고, 우리는 인간으로서 가족과 국가, 나아가 인류라는 거대한 사회와 같은 공동체 질서의 일원이라는 도덕적 존재이며, 인간의 존엄성도 여기에서 나온다”는 표현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왜 스미스의 충실한 계승자로 알려진 리카도와 맬서스는 이러한 공동체의 문제로 경제에 접근하고 있는 스미스의 생각과 전혀 다른 관점에서 고전 경제학의 주춧돌을 형성하였을까요? 폴라니는 타운센드라는 인물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타운센드는 무인도에서의 개와 염소이야기를 근거로 “인류의 수를 조절하는 것은 식량의 양이다”는 주장을 합니다. 타운센드는 인간은 실제로 짐승이며, 그래서 최소한의 정부만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개와 염소가 굶주림과 식량 희소성의 원칙에 따라 균형을 가지게 되듯이, 인간사회도 그러할 것이라는 것이죠. 따라서 그 어떤 치안관도 굶주림만큼 훌륭하게 노동자들의 기율을 잡을 수 없을 것이고, 빈민법은 결코 유지되어서는 안된다고 보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사회가 균형과 질서를 유지하는 것은 인간의 생물학적 본성(이기심)이라는 부동의 기초에 기반한다는 것이죠.

공리주의자이며 개혁주의자였던 벤담과 전통주의자였던 버크도 이러한 타운센드의 견해에 관해서는 의견일치를 보였다고 합니다. 버크는 감옥에 빈민들을 가둬 관리하는 것보다, 고용을 통해 스스로 복종하도록 하는 것이 행정적으로 유리하다고 보았고, 구민법 대체가 아니라 철폐가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빈민들을 시장이 알아서 챙기도록 하라. 만사가 해결될 것이다.”
벤담은 빈곤이란 “사회 안에 살아남은 자연이며, 그것이 강하는 물리적 제재가 바로 굶주림이다”고 보았고, 이러한 물리적 제재로 충분하니, 굶주림에 대한 정치적 제재는 불필요하다고 봅니다. “...산업을 위해서는 굶주림이라는 육체적 제재가 효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결핍 상태를 증대시키는 것이야말로 정부의 과제”라는 주장을 보면 확실히 알 수 있습니다. 당연히 벤담도 구민법에 반대했겠죠.

이제 다수의 시민들이 반기아 상태에 처하게 되는 사태도 사회가 최고의 번영 단계에 도달해 어쩔 수 없이 치러야 할 대가라는 생각이 받아들여지게 되었습니다. 아담 스미스가 주장한 가치론은 원래 상품 가치는 그것을 생산하는 데 투하된 노동 시간에 의해서 결정된다는 투하 노동 가치론이었습니다. 하지만 근대의 경제에 적용하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판단한 스미스는 지배 노동 가치설과 후에 존 스튜어트 밀에 의해서 다듬어지는 생산비설이라는 대안적 가치 이론을 제시했다고 합니다. 후자는 상품가치는 그것을 생산하는데 투입된 자본, 노동, 토지의 비용에 의해 형성된다는 이론입니다. 아담 스미스는 특유의 조화론적 가치관으로 한 경제에서 지속적인 경제적 부가 증대되면 3대 계급 모두 고르게 분배되어 함께 부유하게 될 것이라는 주장을 합니다.

하지만 현실은 아담 스미스가 생각했던 조화로운 세계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스미스의 주장과는 완전히 상반되는 것이었죠. 그래서 맬서스는 노동자는 임금이 올라가면 성교에 몰두해서 많은 자식을 낳게 되고 이는 자연히 임금 하락으로 이어져, 다시 굶어죽거나 생식력 감소로 이어져서 임금의 수준이 올라가는 균형을 가지게 된다는 임금 철칙을 주장합니다. 그리고 이 임금철칙은 리카도에 의해 사회 전체의 생산에서 노동자들의 몫으로 주어지는 몫은 전체의 생산수준에 의해 일정하게 정해져 있다는 스미스의 임금 기금설과 결합하게 됩니다. 그 결과 결국 임금 수준이란 경제의 호·불황에 관계없이 생계 수준에서 요지부동으로 고정되며, 이러한 관점에서라면 임금 수준을 바꾸려는 노동자들의 노력은 허황된 것이 되고 맙니다. 이렇게 임금 철칙의 적용으로 임금은 항상 제자리로 돌아가는 것이죠. 최저 생계 수준에서...

이렇게 고전파 경제학은 임금철칙과 수확 체감의 법칙 결합시킴으로써 철의 자연법칙을 제시했습니다. 폴라니가 보기에 이는 “완전한 오해”였을 뿐만 아니라 “어불성설”입니다. 왜냐하면, 고전파 경제학이 초석으로 삼았던 이 자연주의적 요소들은 주로 스피넘랜드 법이라는 인간 제도 때문에 생겨난 특이한 상황의 산물에 불과하기 때문이죠. 당시 시장의 모습은 노동 시장이라는 결정적인 요소가 빠져 있는 자본주의에 불과했지만, 고전파 경제학자들은 그것이 진정한 시장 경제의 모습이라고 보았습니다. 그러한 착시 현상 속에서 경제학 이론은 정초되었던 것이죠.

이러한 고전경제학의 출범과 그로 인한 사회에 대한 시장의 절대적 우위가 가지고 오게 될 위험에 대해 인식한 유일한 사람이 이었는데, 폴라니는 로버트 오언을 들고 있습니다. 오언은 국가와 사회가 다른 것이라는 것을 깊이 의식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만약 자연적 진보에 그대로 맡겨두면 공장제 생산이 온 나라에 속속들이 퍼지게 되고 또 거기에 사는 사람들을 전혀 새로운 성격의 인간들로 다시 만들어낼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새로이 생겨나는 성격은 개인의 행복이나 전체의 행복에나 아주 해로운 원리에 기반하고 있으므로, 입법의 개입과 지도가 없다면 가장 개탄스럽고 영구적인 여러 사회악을 낳을 것이다”

그래서 오언은 이러한 사회악이 생겨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시장경제의 여러 제도들에 내재한 해로운 경향들에 대해 사회가 의식적으로 방향을 제시하고 입법으로서 현실에 강제하여 견제해야만 한다고 주장합니다. 사람들이 점점 저질 인간으로 타락하는 것은 경제적 문제인 것처럼 보이지만 그 본질은 사회적 문제라고 주장한 오언은 한마디로 진정한 문제는 예전에 그의 경제적 존재가 묻어들어 있던 자연과 인간과의 여러 관계들이 완전히 황폐화되고 있다고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