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월 21일 목요일

<거대한 전환> 10장 발제문

칼폴라니의 <거대한 전환> 세미나를 생활도서관 친구들과 진행하고 있다.
매주 각자 1장씩 발제를 하고 토론하는 방식으로 진행하고 있는데,
이번주 나는 10장의 발제를 맡았고, 아래는 발제문이다.


                                                                                                                                 


10장, 정치경제학과 사회의 발견.

"거꾸로 읽는 경제학설사?"

이건 뭐 이번 장을 제목을 다시 단다면 ‘거꾸로 읽는 경제학설사’ 정도가 되겠군요. 폴라니는 이번 장에서 자본주의 사회에 살아가고 있는 우리가 일반적인 상식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경제학적 원리의 기초가 얼마나 허구적인 것인지, 잘못된 전제 위에 서 있는 것인지, 얼마나 첫 단추를 잘못 끼운 것인지에 대해서 쓰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번 장에는 고전 경제학의 창시자인 아담 스미스와 그의 이론을 발전시켜 고전 경제학의 주춧돌을 놓은 맬서스와 리카도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고, 경제학설사를 다시 점검해 본다는 마음으로 읽어야 했던 장이었습니다. 물론 그가 소개하는 이 고전경제학적 전통은 맹공격을 위한 사전준비 작업이지만 말이죠.ㅋ
 
폴라니는 아담 스미스는 빈민구제를 문제로 인식조차 하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스미스에게 부라는 것은 단지 공동체 생활의 한 측면에 불과하며 공동체의 여러 목적에 복속되는 존재로 여겼다는 것이죠. 다시 말해, 부의 문제란 거대한 인민 전체 집단의 물질적 복지를 뜻하는 것이라고 스미스는 보고 있습니다. 이러한 스미스의 견해는 “인류의 존엄성은 인간이 도덕적 존재라는 것에서 기인하고, 우리는 인간으로서 가족과 국가, 나아가 인류라는 거대한 사회와 같은 공동체 질서의 일원이라는 도덕적 존재이며, 인간의 존엄성도 여기에서 나온다”는 표현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왜 스미스의 충실한 계승자로 알려진 리카도와 맬서스는 이러한 공동체의 문제로 경제에 접근하고 있는 스미스의 생각과 전혀 다른 관점에서 고전 경제학의 주춧돌을 형성하였을까요? 폴라니는 타운센드라는 인물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타운센드는 무인도에서의 개와 염소이야기를 근거로 “인류의 수를 조절하는 것은 식량의 양이다”는 주장을 합니다. 타운센드는 인간은 실제로 짐승이며, 그래서 최소한의 정부만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개와 염소가 굶주림과 식량 희소성의 원칙에 따라 균형을 가지게 되듯이, 인간사회도 그러할 것이라는 것이죠. 따라서 그 어떤 치안관도 굶주림만큼 훌륭하게 노동자들의 기율을 잡을 수 없을 것이고, 빈민법은 결코 유지되어서는 안된다고 보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사회가 균형과 질서를 유지하는 것은 인간의 생물학적 본성(이기심)이라는 부동의 기초에 기반한다는 것이죠.

공리주의자이며 개혁주의자였던 벤담과 전통주의자였던 버크도 이러한 타운센드의 견해에 관해서는 의견일치를 보였다고 합니다. 버크는 감옥에 빈민들을 가둬 관리하는 것보다, 고용을 통해 스스로 복종하도록 하는 것이 행정적으로 유리하다고 보았고, 구민법 대체가 아니라 철폐가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빈민들을 시장이 알아서 챙기도록 하라. 만사가 해결될 것이다.”
벤담은 빈곤이란 “사회 안에 살아남은 자연이며, 그것이 강하는 물리적 제재가 바로 굶주림이다”고 보았고, 이러한 물리적 제재로 충분하니, 굶주림에 대한 정치적 제재는 불필요하다고 봅니다. “...산업을 위해서는 굶주림이라는 육체적 제재가 효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결핍 상태를 증대시키는 것이야말로 정부의 과제”라는 주장을 보면 확실히 알 수 있습니다. 당연히 벤담도 구민법에 반대했겠죠.

이제 다수의 시민들이 반기아 상태에 처하게 되는 사태도 사회가 최고의 번영 단계에 도달해 어쩔 수 없이 치러야 할 대가라는 생각이 받아들여지게 되었습니다. 아담 스미스가 주장한 가치론은 원래 상품 가치는 그것을 생산하는 데 투하된 노동 시간에 의해서 결정된다는 투하 노동 가치론이었습니다. 하지만 근대의 경제에 적용하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판단한 스미스는 지배 노동 가치설과 후에 존 스튜어트 밀에 의해서 다듬어지는 생산비설이라는 대안적 가치 이론을 제시했다고 합니다. 후자는 상품가치는 그것을 생산하는데 투입된 자본, 노동, 토지의 비용에 의해 형성된다는 이론입니다. 아담 스미스는 특유의 조화론적 가치관으로 한 경제에서 지속적인 경제적 부가 증대되면 3대 계급 모두 고르게 분배되어 함께 부유하게 될 것이라는 주장을 합니다.

하지만 현실은 아담 스미스가 생각했던 조화로운 세계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스미스의 주장과는 완전히 상반되는 것이었죠. 그래서 맬서스는 노동자는 임금이 올라가면 성교에 몰두해서 많은 자식을 낳게 되고 이는 자연히 임금 하락으로 이어져, 다시 굶어죽거나 생식력 감소로 이어져서 임금의 수준이 올라가는 균형을 가지게 된다는 임금 철칙을 주장합니다. 그리고 이 임금철칙은 리카도에 의해 사회 전체의 생산에서 노동자들의 몫으로 주어지는 몫은 전체의 생산수준에 의해 일정하게 정해져 있다는 스미스의 임금 기금설과 결합하게 됩니다. 그 결과 결국 임금 수준이란 경제의 호·불황에 관계없이 생계 수준에서 요지부동으로 고정되며, 이러한 관점에서라면 임금 수준을 바꾸려는 노동자들의 노력은 허황된 것이 되고 맙니다. 이렇게 임금 철칙의 적용으로 임금은 항상 제자리로 돌아가는 것이죠. 최저 생계 수준에서...

이렇게 고전파 경제학은 임금철칙과 수확 체감의 법칙 결합시킴으로써 철의 자연법칙을 제시했습니다. 폴라니가 보기에 이는 “완전한 오해”였을 뿐만 아니라 “어불성설”입니다. 왜냐하면, 고전파 경제학이 초석으로 삼았던 이 자연주의적 요소들은 주로 스피넘랜드 법이라는 인간 제도 때문에 생겨난 특이한 상황의 산물에 불과하기 때문이죠. 당시 시장의 모습은 노동 시장이라는 결정적인 요소가 빠져 있는 자본주의에 불과했지만, 고전파 경제학자들은 그것이 진정한 시장 경제의 모습이라고 보았습니다. 그러한 착시 현상 속에서 경제학 이론은 정초되었던 것이죠.

이러한 고전경제학의 출범과 그로 인한 사회에 대한 시장의 절대적 우위가 가지고 오게 될 위험에 대해 인식한 유일한 사람이 이었는데, 폴라니는 로버트 오언을 들고 있습니다. 오언은 국가와 사회가 다른 것이라는 것을 깊이 의식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만약 자연적 진보에 그대로 맡겨두면 공장제 생산이 온 나라에 속속들이 퍼지게 되고 또 거기에 사는 사람들을 전혀 새로운 성격의 인간들로 다시 만들어낼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새로이 생겨나는 성격은 개인의 행복이나 전체의 행복에나 아주 해로운 원리에 기반하고 있으므로, 입법의 개입과 지도가 없다면 가장 개탄스럽고 영구적인 여러 사회악을 낳을 것이다”

그래서 오언은 이러한 사회악이 생겨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시장경제의 여러 제도들에 내재한 해로운 경향들에 대해 사회가 의식적으로 방향을 제시하고 입법으로서 현실에 강제하여 견제해야만 한다고 주장합니다. 사람들이 점점 저질 인간으로 타락하는 것은 경제적 문제인 것처럼 보이지만 그 본질은 사회적 문제라고 주장한 오언은 한마디로 진정한 문제는 예전에 그의 경제적 존재가 묻어들어 있던 자연과 인간과의 여러 관계들이 완전히 황폐화되고 있다고 보았습니다.

댓글 1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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