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2월 5일 금요일

채식주의자

우석훈의 <생태요괴전>은 개인적으로 비어있는 부분이 많은 책이라 생각한다.
대중서이고, 또 청소녀층을 겨냥한 책이니...당연한 것이겠지만
조금 더 엄밀하게 썼더라면 더 좋지 않았을까하는 아쉬움이 드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서문에 밝힌 것처럼 우석훈이 겨냥한 것을 생태적 관심을 유발시키는 것으로
한정시킨다면...적어도 이 책은 나에게 성공한 셈이다...


이 구절

 유기농 식품이나 생태적으로 건전한 음식을 많은 사람들이 '맛있다'고 느낀다면, 한국 생태 문제의 절반 정도는 이미 해결딘 것이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아, 나도 채식을 시작해야 하는가?
고기를 포기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건 무척 나를 곤혹스럽게 만드는 질문인데,
저 구절이 계속 머리를 맴도는 것이다.


내가 만난 첫 번째 채식주의자는
잠시 캐나다에 머물 때 만났던, 스위스 친구 패트릭이다.


우리는 처음에 무척 서먹한 사이였는데...
어느 날 내가 입고 간 체게바라 티셔츠를 매개로 급속히 가까워져서,
결국 둘도 없는 형제가 됐다. communism이라는 말만 꺼내도 손사래를 치는 한국 유학생들을
함께 비난하면서...ㅋㅋ
패트릭은 스위스 녹색당 당원이었고, 채식주의자였다
내가 캐나다에서 만난 사람 중에 유일하게 마르크스에 관한 대화를 할 수 있었던 친구이기도 했는데, 그는 성인이 되고 난 후 정치적인 이후로 채식을 시작했다고 말했을 때...
나는 약간의 충격을 받았던 것이 사실이다

나는 패트릭을 만나기 전까지 채식주의를 건강을 과도하게 신경쓴 나머지
우정을 포기한 예민한 사람들이나 하는 것으로 생각했는데,
생태적인 이유로 채식을 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알게 됐고,
패트릭과 같은 채식주의자들에게 약간의 존경심과 경외심을 가지게 됐다
내가 캐나다에 2008년에 있었으니, 그 시기는 한국의 미국산 소고기 수입문제로 난리가 났던 시절 아닌가? 나는 홈스테이 아줌마에게
자랑스레 바보같은 대통령때문에 한국이 발칵 뒤집혔다며
으기양양하게 촛불시위대 사진을 보여주면서도...미국소 보다 더 위험하다는 캐나다산 소를
아주아주 잘 먹었다... 저녁 상에 소가 오르면 아주 감사하는 마음으로 얌얌 잘 먹었다...
소고기를 포기할 수 있을까? 없을 것 같았다...광우병 걸려 뒤져도 먹다 뒤지자...
패트릭을 존경하고, 소 먹으면 일년에 몇 번이나 먹는다고?하는 질문으로
스스로를 합리화 시키면서...
패트릭과의 만남이 제기한 채식이라는 질문을 머리속에서 지웠다...


그리고 한국에 왔는데,
대학신문사에서 같이 일하던 선배가 고기를 안드신다고 했다
선배는 직장 회식자리에 가면 각종 밑반찬으로 술안주를 대신한다고 했다...
어...채식...
선배는 조금 나이롱 채식주의잔데...아주 가끔 닭도 드시고 그런다....
이런 분들을 페스코 베지테리안, 플렉시테리안 등으로 부르는 모양이다


그리고 얼마 전에
학교 동아리에 신입이 들어왔는데...
채식주의자라고 했다.
얘가 내가 본 베지테리안 중에 가장 강성(?)인 것 같다
비건(Vegan)이라고 부른다고 하는데,
유제품, 동물의 알 등의 모든 종류의 동물성 음식을 거부 한다고 한다...
내가 보기에 이 친구는 건강/미용 이 쪽에 방점을 두고 채식을 시작한 것 같다...
하지만 한국에서 채식하기가 여간 까다로운 일이 아닌데...
도시락을 싸다니며 철저히 채식을 하는 모습을 보고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이렇게 세명의 채식주의자를 알게 된건데...
자...
그럼 나는....어떻게 할 것인가?
생태문제의 절반이 해결된다는데....

지난 달에 초콜릿 복근을 만들겠다며 냉동실에 가득 재워 둔
닭가슴살만 다먹고...-.- 시작해 봐야겠다고 생각한다...
오늘 점심은 삼겹살을 먹었는데..너무 맛있었다...아, 괴롭다.
달빛요정 형님처럼 나도 너무 "도토리를 싫어하고, 고기반찬을 좋아했다"
때론 그냥 매트릭스안에 있을 걸 하는 생각이 든다


2010년 2월 3일 수요일

<거미여인의 키스>

"거미여인의 키스"를 영어스터디하는 친구들과 함께 봤다.

영어스터디에서 "신자유주의와 박애주의"의 상관관계를 다룬 텍스트를

다루고 있는데, 그 연장선상에서 인권영화의 기념비적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는

"거미여인의 키스"를 보기로 한 것이다.


                              


컬트무비라는 이야기를 듣고

무지 재미 없겠다고 생각했지만 착오였다.

황지우가 시를 헌사할 만하다.


개인의 자유를 소중히 생각하는 호모인 몰리나,

사회의 억압적 구조를 타파하기 위해 개인의 희생은 불가피하다는 정치범 발렌틴.

구조와 행위자...


이 영화는 1985년, 내가 태어나던 해 나왔는 데

이 시기는 한국은 물론 영화 감독의 나라(브라질)가 있는

남아메리카도 마르크스주의적 전통에 강하게 사로잡혀 있던 시기였다고 한다.

(이 시기를 경험적으로 서술하기에는 내가 너무 어렸다 ㅋ)

어떻게 이 당위를 대중에게 설득시킬 것인가?

어떻게 사회의 폭압적이고 구조적인 억압으로부터 민중을 해방시킬 것인가?

대의를 위해 소의를 희생할 수 있는 시기였고,

그것은 역사의 이름앞에 정당화될 수 있던 시기였다.

그러한 흐름에 이 영화는 새로운 질문을 던지고 있다.


신념의 사나이 발렌틴이 몰리나의 진실한 사랑에 거미여인과의 짧은 단꿈에 빠진 사이, 몰리나는 사회구조를 지키려는 자와 바꾸려는 자의 틈바구니에서 최후를 맞이하고 만다. 발렌틴도 몰리나도 사랑의 힘으로 조금씩 자신의 정체성을 이동시켜 갔다. 영화는 우리의 자유라고 하는 것은 결코 사회구조로 부터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하면서도, 인간해방를 위해 헌신하는 개인의 삶도 자유를 배반하는 거미줄에 갇히고 마는 역설을 이야기하고 있다. 결국 중요한 것은 구역질나는 나찌 부역 영화에 분노하던 발렌틴으로 하여금 거미여인을 이해하게 만들었던 몰리나의 사랑, 나찌 따위가 무엇이건 아름다운 로맨스에 열광하던 몰리나로 하여금 변혁에 동참하게 만들었던 발렌틴의 사랑, 바로 그것일 터.


거대한 서사에 함몰되었을 때 우리는 정작 중요한

이 사랑..일상, 웃음, 눈물을 놓치고 만다.

보수주의자 김훈은 단호하게 말한다

"나는 신념보다 의심을 신뢰한다"고.

신념이 사라져 버린 시대, 정의가 해체되어 버린 시대, 허위가 장악한 시대...

이 말은 때로 위험할 수도 있지만, 나도 근본적으로 김훈의 말에 동의한다.

신념은 의심의 과정에 묻어나는 것이지,

의심을 장악해 버린 화석화 된 신념이 말해주는 것은

질문과 자기성찰을 멈추어버린 가여운 영혼의 몸부림 뿐,

2월 1일 박노자의 한겨레 칼럼 제목은

"회의할 줄 아는 인간이 자유인이다"였다


황지우의 시를 덧붙인다.



주인공의 심장에 박힌 총알은 순간,

     퍼어런 별이 되고


     황지우


 

호모인 몰리나가 애인 발렌틴의 혁명 조직원에게 다가가자마자

 그를 미행했던 브라질 國家安全企劃部 요원들이 덮치고

 도망쳤던 브라질 運動圈 택시가 다시 몰리나에게 다가와 총을 쏘고 달아나버린다

 목에 빨간 스카프를 한 몰리나, 그의 푸른 와이셔츠 포켓에 구멍이 뚫려 있다

 가련한 나의 몰리나, 왼손으로 심장을 만지면서

 한바탕 총격전으로 한적해진 광장을 천천히, 걸어간다

 그의 얼굴에 고통은 없었다

 다만, 심장을 찌르는, 쩌릿쩌릿한 회한 같은 것을 지그시 참고 있는

 흐릿한 우울이 떠 있다

 나는 내 벌떡거리는 염통을 만지면서

 이 속에 갑자기 뚫고 들어온

 너무나 차가워서 순간 뜨거운 金剛돌을 느끼고 있다

 이게 만약 나의 죽음이라면

 죽음은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것이구나

 아아, 이렇게 내가 죽다니

 알고는 있었으나 믿어지지 않는 사실!

 이 돌이킬 수 없는 깨달음!

 삶이란 게, 좆또 아무것도 아니었네

 서울역 뒤 염천교 부근처럼 돌포장으로 되어 있는 광장을 몇 발자국 더 걸어가는 내가

 죽어가면서 느낀 삶이란

 그저 어지럽다는 것,

 나는 길바닥에 푹 꼬꾸라진다

 그뒤로는 기억할 수도 전달할 수도 없는, 완전한 全體

 뒤늦게 안기부 요원들이 꼬꾸라진 몰리나에게 달려와 총을 턱에 대고 외쳐댄다

 그 전화번호를 대, 그러면 널 병원으로 데려가주겠어, 번호만 대, 넌 살 수 있어, 대란 말야

 몰리나, 흐린 눈으로 그들을 한번 쳐다보고는 눈을 감아버린다

 안기부 요원들, 이 더러운 호모 새끼, 이 쓰레기 같은 인간! 침을 뱉고 몰리나를 길가 쓰레기장에 던져버리고 간다

 몰리나는 오직 아름다워지고 싶기 때문에 살 수 있었다

 난 잘못 태어났단 말야, 알잖아, 넌 내가 지금 무얼 원하는가, 그래, 내 다리를 더 위로 올려줘

 쓰레기 같은 삶

 쓰레기통에 버려진 美

 주인공의 심장에 박힌 총알은 순간, 퍼어런 별이 되고

 

탄탄한 서평 쓰기 6가지 노하우


개인적인 감상 위주의 독후감이나, 리뷰에서 벗어난 객관적인 서평쓰기를 위한 6계명을 정리했습니다. 어떤 요소가 들어가야 하는지, 어떤 요소는 줄여야 하는지 검토해 보겠습니다.

1. 책 내용을 “전부” 요약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라. 이런 서평은 지루하다. (요약에 그치는 대학 레포트라고 생각하지 마라!)

2. “What?” 무엇을 이야기 할 것인지 정해라. 할 이야기가 명쾌하지 않은 서평은 단숨에 안 읽힌다. 해당 책을 읽지 않은 사람에게 ‘장황한 서평’은 고역이다.

3. 서평 쓰기 전에 밑그림 그리는 작업 즉, 구조 짜는 과정을 거쳐라.

(마무리가 안 되거나, 한쪽으로 치우치게 되거나, 시간이 오래 걸리는 사람에게 필수!)

4. 구조를 짜면서 ‘주제’가 살아있는지 점검하라. 여기서 말하는 책의 주제가 아니라 서평의 ‘주제’다. 도대체, 이 서평을 왜 쓰는가?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이길래 서평을 쓰는가? 스스로를 설득하지 못하면, 독자를 설득하지 못한다.

5. 서평의 ‘제목’은 하고 싶은 말 즉, 주제가 드러나면 좋다.

6. 좋은 글은 고속도로처럼 빠르다. 중간에 “턱턱” 걸리거나, 장황하면 좋은 글이 아니다.

 

참고) 구조짜는 법

① 책을 읽은 후 ‘충분히’ 생각할 시간을 갖는다.

(읽은 후 바로 쓰는 것은 좋지 않다. 하여, 무료서평이벤트 때문에 쓰는 습관은 도움이 안된다. 매번 같은 패턴의 ‘붕어빵식 서평’을 쓰게 된다. 관점없는 서평은 ‘죽은 서평’이다.)

② 생각의 시간을 통해, 서평에 ‘무엇을 담고 싶은지’ 정리한다.

③ 서평에 담고 싶은 키워드를 백지에 정리해본다.

④ 이 중 가장 하고 싶은 말 ‘한가지’를 고른다. 나머지 키워드는 과감하게 ‘축소’한다.

⑤ 본문에선 고른 ‘한가지’ 주제를 중심으로 책 내용+관점을 전개해나간다. ‘축소’한 키워드는 덧붙이는 방식으로 한 문단을 마련해 추가로 담아낸다.

⑥ 몇 단락으로 쓸 것인지, 단락 구성은 어떤 순서로 할 것인지 계획한다.

⑦ 단락 순서가 ‘유기적으로’ ‘매끄럽게’ ‘단숨에’ 연결되는지 말로 풀어본다.

⑧ 만들어 놓은 ‘구조’가 서평을 통해 하고 싶은 말. 즉 ‘주제’를 잘 전달하고 있는지 점검한다.

⑨ 서평쓰기를 시작한다.

※ 책 읽는 데 2일이 걸렸다면, 생각의 시간 역시 2일, 구조 짜는 시간은 1일 정도 잡는다. 초고 쓰는데 1일, 퇴고하는데 1일을 할애해 충분히 읽고, 생각하고, 집짓고, 만들고, 다듬는다. 특히, 초심자의 경우 생각, 구조, 퇴고 시간을 얻지 못하면 완성도가 떨어질 수 있다.

이렇게 1권의 책을 읽고, 쓰는데 걸리는 시간은 대략 일주일 정도면 충분하다. 단, 분량이 많은 책일 경우 더 걸릴 수 있다. 숙련자의 경우 경험이 쌓이면 시간을 줄일 수 있다. 독서가 '책과의 대화'이듯 서평 역시 '독자와의 대화'라고 생각하면 좋다. 그래야, 생각거리와 반문을 담을 수 있다.


출처:http://maehok.tistory.com/category/글쓰기